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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의 금고, 어디서 채워지나? 신앙 공동체의 경제학

 

이미지출처: The Forbes Australia

바티칸의 숨겨진 금고: 신앙 공동체의 경제 이야기

가톨릭교회의 심장부인 바티칸 시국은 단순한 신앙의 본산을 넘어, 거대한 경제 운영체로 기능한다. 자체 산업 기반이 거의 없어 관광과 자산 운용에 크게 의존하는 구조다. 바티칸 박물관은 매년 수백만 명이 찾는 핵심 수입원이다. 2019년에는 약 700만 명의 관광객으로 미화 1억 달러에 육박하는 수익을 올렸다. 박물관 수입은 바티칸 재정의 든든한 축을 이루며, 운영비를 뺀 절반가량이 순익으로 교황청 살림에 보태진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관광객이 끊기며 바티칸 수입이 25~45% 급감, 재정 비상이 걸렸던 것은 교회의 재원이 관광 상업활동에 크게 의존함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바티칸 시국 정부는 관광산업 외에도 다양한 수입원을 확보한다. 박물관 입장료, 시스티나 성당 및 정원 투어, 기념주화와 우표, 각종 기념품 판매 등이 주요 수입원이다. 바티칸이 자체 발행하는 주화와 우표는 희소성으로 수집가 수요가 높아 큰 수익을 낸다. 바티칸 출판물 판매나 인세 등도 재정에 기여한다. 그러나 바티칸 당국은 이러한 상업 활동 수입 규모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다. 기념품, 관광 수익 및 지출 내역은 외부에 거의 공유되지 않으며, 재정 보고도 제한적이다.

교황청 예산의 또 다른 축은 신자 헌금(성베드로 성금)과 투자 수익이다. 2023년 교황청은 약 5,237만 유로의 성금을 모았으나, 1억 유로 이상을 지출해 적립금까지 사용했다. 부동산 및 금융투자로 4,590만 유로 수익을 올렸지만, 여전히 연간 8,300만 유로 적자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교회가 막대한 자산을 보유하고도 재정난에 빠진 이유로 방만한 운영과 내부 관리 부실을 지적한다. 실제로 바티칸은 세계적 규모의 부동산을 소유했지만, 과거 투자 손실과 금융 스캔들로 신뢰를 잃은 바 있다. 성직자 연금, 인건비, 전 세계 교회 지원금 등 고정비가 막대하기 때문이다. 교황청은 이를 해결하려 관광 및 종교 상품 판매 등 상업 활동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바티칸에는 약 4,800명의 직원이 근무하며, 박물관 부문에만 1,000여 명이 상시 운영된다. 이러한 운영비 충당을 위해 교회는 세속적 수익사업에 나설 수밖에 없는 구조임을 스스로도 인정한다. 하지만 "교회가 영리를 추구한다", "막대한 자산을 활용하지 않고 신자에게만 의존한다"는 비판은 여전하다. 일부에서는 바티칸이 예술품과 부동산을 처분해 빈곤층을 도와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성스러움'이 상품이 될 때: 종교 상품의 브랜드 전략

가톨릭교회는 오랜 역사 속에서 종교 상품과 교황 브랜드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며 수익화해왔다. 묵주, 메달, 성상 등 성물은 신앙의 상징이자 교회 공식 브랜드 상품으로 포지셔닝된다. 바티칸은 성 베드로 대성당과 박물관 등에 직영 기념품점을 운영하며 교황 친필 축복 카드, 성인상, 로자리오 등을 판매한다. 이 제품들은 "교황의 축복을 받은 정품" 이미지로, 일반 상점보다 고가임에도 높은 판매량을 보인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당시에도 교황 이미지를 활용한 석고상, 손수건, 티셔츠 등이 불티나게 팔렸고, 일부는 바티칸 수입 정품으로 포장돼 유통됐다. 교황과 성인 이미지는 거대한 종교 브랜드로 기능하며, 교회는 이를 활용한 판매망으로 수익을 창출한다. 교회는 상표권 보호에도 적극적이다. 교황 및 바티칸 명칭, 문장, 이미지의 상업적 사용을 막기 위해 법적 소송도 벌인다. 2018년 스페인에서는바티칸이름을 사용한 민간 웹사이트를 상대로 법적 분쟁에서 승소한 바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상업화를 경계해 자신의 얼굴 주화 발행을 막았지만, 오히려 과거 교황 주화의 희소성이 상승하는 역설적 현상이 발생했다. 바티칸 발행 유로화 주화, 우표 등은 한정판으로, 전 세계 수집가들의 프리미엄 거래 대상이 되며 상당한 수익을 안겨준다. 공식 판매망 외에도 수도회나 교구 운영 대형 기념품샵, 세계 각지 민간 판매점들이 성물을 판매하며, 교회는 이들에 대해 로열티나 상표권으로 수익을 얻는다. 이를 통제하려 교황청은 브랜드를 법적으로 등록하고 무단 사용 시 소송도 불사한다.

일부 보수 가톨릭 매체는 이를 "신전에서 상인들이 장사치는 상황"이라 비판한다. 신자 일부는 성수조차 상품으로 팔리는 현실에 분노하며신앙의 경박한 상품화라는 표현을 쓴다. 교회 측은신자 수요가 있기 때문에 판매하는 것이라는 현실론을 내세우지만, 이 역시 상업화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수백억이 오가는 신앙 행사: 축제인가 비즈니스인가?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 같은 대규모 국제 종교 행사는 가톨릭 교회 대표 신앙 행사다. 그러나 이들 행사의 운영 방식은 지속적으로 상업화 논란을 불러왔다. 2023년 포르투갈 리스본 세계청년대회는 약 1 9천만 달러 공공 예산이 투입됐고, 교황 미사용 야외 제대 설치에만 500만 유로가 소요됐다. 현지 여론은 "혈세 낭비"라 반발했고, 정부는 예산을 일부 삭감하기도 했다.

참가자들도 무료가 아니다. 2016년 폴란드 대회는 전체 예산 81%를 청년 참가자 등록비로 충당했다. 주최 측은 "자기 몫 감당하는 신앙 행위"라 했지만, 사실상 행사 참여조차 경제적 여건이 요구되는 구조였다. 기업 협찬과 정부 후원이 얽히며 이들 행사는 하나의 상업 이벤트처럼 변질된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개최 도시는 순례객 유치를 통한 수천억 원 경제 효과를 기대하며 행사를 유치한다.

성지순례 또한 상업화됐다. 바티칸은 순례여행 조직인 ORP를 통해 항공사와 제휴, 전세기를 운항하고 순례를 여행 상품처럼 운영해왔다. 프랑스 루르드 같은 유명 성지는 호텔과 기념품점 넘쳐나는 상업지구로 변질돼하느님의 디즈니랜드라는 조롱을 받기도 했다. 심지어 병입 성수를 판매하거나 교황 행사 입장권이 암거래 시장에서 유통되는 등, 신앙 행사마저도 금전적 가치가 매겨진다. 이전 프란치스코 교황은성사가 돈과 결부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지만, 현실은 여전히 그렇지 못하다.

가톨릭 교회는 신앙 공동체이자 동시에 막대한 자산과 브랜드를 보유한 거대 조직이다. 현실 운영을 위해 수익 활동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설득력 있지만, 신성한 신앙 요소가 지나치게 상품화되는 모습은 신자와 비신자 모두에게 의문과 불쾌감을 자아낸다. 중요한 것은 투명성과 균형감각이다. 교회가 수익을 창출하더라도 그 목적이 분명히 공익과 사랑 실천에 기여하는가. 그리고 상업적 행위가 신앙 본질을 침해하지 않는가에 대한 끊임없는 자기 반성이 필요하다.